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화여자대학교/역대 총장 (문단 편집) === 제7대 [[김활란]][* 金活蘭. '활란'은 Helen이라는 영어 이름을 비슷한 음의 좋은 뜻을 가진 한자를 덧대어 한자어 이름처럼 삼은 것이다. '베델'이 '배설(裵設)'이 되고, '오언(Owen)'을 '오원(吳元)'으로 쓰는 것과 비슷. 영어 이름은 미국 유학 및 해방 후 각종 외교활동에 참여할 때 필요했기 때문에 편의상 지은 것이다.] === [[이화학당]] 고등과와 대학과를 졸업했고, 모교 교사가 되어 교장까지 되었다. '''이화 최초의 한국인 교장(총장).'''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의 이유로 '''여러 방면에서 까이고 까이는 총장.'''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학교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도 있지만 그녀가 한 일은 다음과 같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부터 [[조선총독부]]가 지원하는 조선부인연구회, 방송선전협의회, 애국금차회에 참여했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조선언론보국회, 조선임전보국단을 통해 강연하며, 《동양지광》, 《조광》에 대한 기고로 [[일본]]의 전쟁 지원을 선동하는 친일 및 전쟁지원 활동을 벌였다. 또한 [[일본]]의 한민족 말살정책인 [[신사참배]] 강요에 협조하고, 징병을 권유하는 강연에도 앞장섰다는 것이 그녀의 과오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연희전문학교]]의 [[윤치호]] 교장과 비슷한데 더 비판받는 듯.[* 여권운동가로서의 공적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일제 말기 정신대 모집을 위한 강연에 참석했다는 이야기 등, 그녀 자신이 걸었던 길과는 상반된 일까지 하면서 친일을 했다는 것이 일종의 비웃음을 닮은 질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서 공적을 살펴보면, 이화여대를 엄청나게 크게 키우고, [[이화여자대학교/캠퍼스|캠퍼스]]를 확장하고, 해방 이후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냈으니, 총장 역할에 굉장히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머리가 상당히 좋았다고 하며[* [[유관순]] 열사도 [[이화학당]] 재학 시절 김활란 선배를 보고 진짜 대단하다고 평했다 한다.] 여권향상 부분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국회의원]] 총선에서 낙선한 뒤로 민중들의 여권인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YWCA]] 활동을 열성적으로 추진하였다. 실로 여권운동 향상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 학교의 여학생들의 [[정신대]] 지원을 독려한 사람이 무슨 여권향상 운동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30530192112003|이대생들을 중심으로 예전부터 동상 철거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대학 대부분이 양지바른 터에 자랑스럽게 친일파 동상을 세워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철거운동을 하는 곳은 이대가 유일하다는 후문. 여담이지만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만든 교회가 바로 [[금란교회]](金蘭敎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